“예전부터 약간 허리가 구부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들이 생일 때 어깨에 메는 교정기까지 사 주고, 신경 좀 쓰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내가 나의 몸에 대해서 너무 자만했던 것 같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최근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그가 텔레비전에서 한 말이다. 허리가 잔뜩 굽은 채 아내의 도움을 받거나 휠체어를 타는 모습도 함께. 400m도 뛰기 힘든 내게 42.195㎞를 쉬지 않고 달리는 마라토너는 경이의 대상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13년 전이다. 마흔이 되면서 담배를 끊고 거의 매일 4㎞를 달렸던 적이 있었다. 왜 뛰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일종의 40대 진입에 대한 나의 각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보리라는 비장한 의식행위였던 것 같다.
처음엔 1㎞만 뛰고도 다리는 후들거렸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일주일을 견디니 자신감이 붙었고, 날이 갈수록 거리도 늘어났다. 공원 한 바퀴를 돌면 4㎞였는데, 4개월 정도 후엔 힘에 부치긴 했어도 완주할 수 있었다.
그때 희열은 지금은 생생하다. ‘해냈다’는 성취감은 생각보다 컸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달릴수록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느꼈었다.
하지만 1년이 채 못가서 소나기처럼 닥친 여러 답답한 직장 문제들은 다시 담배를 찾게 했고, 뜀박질도 멈추게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생활도 안정을 찾고, 마음만 먹으면 시간도 낼 수 있지만 다시 뛸 엄두는 못 내고 있다.
그동안 엉덩이 힘으로 밥벌이를 해온 날들은 장단지와 허벅지 근육은 빼먹고, 뱃살만 두둑한 중년으로 만들어놨다. 조금만 빨리 걷거나 5층 계단만 올라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요즘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직립’만 있고 ‘보행’은 없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운전석에 앉으면 원하는 빌딩 주차장에 세우고 다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짧은 거리는 킥보드를 타고 가고, 그나마 가기 싫으면 배달시키면 그만이다.
아이들은 학교 갈 날이 확 줄고, 어르신은 경로당에 가지 못한다. 직장인들은 대중교통을 기다리며 서 있고, 코로나19로 진료소 앞에 서 있다. 걷는 인간보다 서 있는 인간이 많은 세상을 진화론 관점에서 보면 수 만 년 뒤 인간 모습을 어떻게 예측할까 궁금하다.
걷는 행동만 줄어든 게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 감각을 퇴화시키는 문명의 진화도 무섭다. 자율주행이 미래 자동차산업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하지만, 나는 오히려 즐거움을 뺏기고 감각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부터 앞선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두 팔, 밟는 깊이 만큼 속도를 내는 발바닥의 감각은 물론 전방의 사물과 좌우 백미러로 옆 차선까지 짧은 시간에 보고 해석하는 시각 기능을 반납하고 우린 어떤 보상을 받을까? 쓸수록 진화하고 안쓰면 퇴화한다. 나는 이 진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장단지와 허벅지가 그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자판도 보지 않고 감각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두 손가락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봄이다. 걷자. 걸을 수 있을 때 걷자. 오늘 천보 걸었으면 한 달 뒤 만보에 도전하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걷자. 지구 5바퀴를 달렸다는 사나이가 한 말을 되새기자. ‘나의 몸에 대해서 자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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