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이 황금률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기 보다 서비스 수혜자도 기억해야 할 아포리즘이다. 서비스는 수혜자와 제공자가 늘 동일하지 않으며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민원인이 관공서에 용무가 있어 방문할 때에 이 대상은 서비스 수혜자가 된다. 하지만 관공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던 대상이 상대 고객의 업장에 방문하면 서비스 수혜자의 입장은 바뀐다. 서비스는 이렇게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대접을 받을 때에도 우린 서로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의 민원서비스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 한다. 사람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다르고 사용하는 단어 역시 각자 다르다. 민원인은 특정하지 않으며 100인 각색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민원현장에서는 사소한 오해들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민원을 담당하는 서비스 제공자는 민원업무에 대한 전문가이므로 처리하려는 내용이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민원인은 던져주는 구슬을 하나씩 잘 꿰어 알아들어야 하는 고충이 있다. 이런 뜻으로 말을 했지만 상대는 저렇게 알아들어 혼선이 생기는 것은 서비스 제공자의 의도와 다르게 민원인이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언어로 말하며 상대가 자신과 같은 뜻으로 알아듣기를 기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서비스 제공자는 친근하게 표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했다거나 무례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일례를 들면, 시니어가 관공서에 방문하여 그곳에서 반말과 존대를 섞어 응대하는 직원을 만날 때이다. 악의는 없으며 어린아이 다루듯 친근한 표현으로 접근하는 것임은 이해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름의 친절로 응대한 것이다. 하지만 무례하게 느껴졌다는 대다수의 반응은 어쩌랴? 친구들과 이야기 도중 본인들도 경험했노라고 토로한다. 나이 든 티 내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먼저 친절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자’는 황금률이 적용되는 지점이다.
얼마 전 휴식을 위해 찾아간 지리산 지인과의 대화 중 배려의 코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오는 날 오전에 둘레길을 걷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건만 며칠 동안 함께 한 일정이 힘겨웠을까 봐 말을 삼켰다. 떠나기 전 날 저녁산책 중에 “내일 오전에 둘레길 걷고 점심 먹고 떠나면 너무 늦나요?”라는 그녀의 말에 덥석, “나도 그러고 싶은데 힘들어도 거절 못 할까 봐 말을 못 했는데... 좋아요!”라고 했더니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라고 할 텐데, 난 그런 배려가 불편해요!”라고 한다. 나름의 배려였건만 거절이 어려워 대답해놓고 끙끙거리는 나를 기준으로 한 생각이었으며 ‘나의 기준’에서 비롯된 오류였던 것이다.
민원처리를 할 때, 토리 히긴스 콜롬비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이론인 ‘접근동기’를 적용해보기를 권해본다. ‘이 일을 잘 해결해서 더 좋은(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잘 처리해서 더 나은(좋은) 서비스 전문가가 되어야지’를 전제하고 응대할 때 결과는 좋을 것이고 고객도 우호적인 태도로 화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입장이 바뀌었을 때, 기꺼이 우군이 되어 줄 지금 내 앞의 민원인에게 생애 마지막 서비스인 것처럼 응대해보자. 민원서비스는 존중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대의 방향이 바로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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